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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고서 모든 게 달라졌어.”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 나오는 이 한 마디는 권태로운 일상의 마디를 끊는 스타카토처럼 설렘을 전해준다. 섬광처럼 만남의 순간 경험하게 되는 짜릿한 느낌, 그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누군가 자필로 쓴 연애편지를 보는 순간에도 경험할 수 있다. 혹은 지식의 헛간을 뒤지다가 뒤엉켰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순간에도 정서는 변이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의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정동이 일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몸과 정신에 켜켜이 쌓인 습관과 관성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이다. 문턱을 넘어서는 모험, 그것은 낯선 세계를 향한 관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화석화되어 가는 직관을 복원하려는 자기 성찰 속에서 가능하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수의 세계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야기의 세계에서 발견하고자 함이다. 이 이야기의 세계는 사건과 문제가 발생하는 삶의 현장으로서 연구자와 연구참여자들의 해석과정을 거쳐 가치판단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이 현장은 한 개인의 희로애락이 체득된 생애, 유년기의 미디어 체험, 특정한 입장을 지닌 담론들, 사회 문화적 현상, 문화집단, 그리고 경계가 있는 사례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현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넘어서서 문제해결의 방안들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처럼 현장의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이유는 곧 내 삶의 문제의식들을 확장하고 해결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적 연구방법론의 목적은 다양한 인간의 주관성과 사회 현상들에 적합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해석하고 분석함으로써 문제해결의 방안들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구성되었다.
제1장 질적 연구의 사상적 배경과 미디어교육에서는 질적 연구의 정의와 의미, 방법론 유형과 사상적 배경, 그리고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교육 연구를 위한 질적 연구방법의 의의와 시사점을 제시한다.
제2장 생애사 연구에서는 생애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된 사상가들의 사유들을 검토한다. 생애사 연구의 사유를 위한 문제틀로서 벤야민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의 사유를 비롯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무의식과 트라우마 개념을 살펴본다. 이어서 생애사 연구의 배경·범주·정의 등을 탐색하고, 방법론의 유형과 특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교육 분야에서 생애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의 적용 가능성과 의미들을 도출한다.
제3장 미디어 비오그라피 연구에서는 개인의 생애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디어 이용행위에 대한 분석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 비오그라피 연구의 문제설정과 정의, 범주와 특징, 이론과 방법론들을 정리한다. 이 연구의 중요한 구성범주는 개인의 생애사와 가족관계, 사회구조적 맥락, 시간구조, 생활세계, 유사상호작용, 기억 등의 사유들을 통해 발견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집단 무의식, 정동, 아비투스, 집단기억 등의 철학, 윤리학, 분석심리학, 사회학의 주요 개념과 범주들을 고려하여 미디어 비오그라피 연구의 문제설정과 논의를 제기한다.
제4장 담론 분석에서는 담론을 형성하는 언어 체계와 현실세계를 상호 연관성 속에서 분석하는 방법과 의미들을 탐색한다. 담론이론의 발전 과정에서 제기되는 쟁점은 담론과 실재대상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담론을 언어 내부의 문제로 간주할 경우 담론 외부의 현실문제들을 간과하거나 ‘언어의 감옥’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담론 바깥의 사유를 강조하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 페쇠의 담론이론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후, 이를 바탕으로 방법론의 유형과 특징으로서 비판적 담론 분석, 뉴스담론의 이론과 그 적용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5장 근거이론에서는 핵심 사상인 상징적 상호작용론, 근거이론의 정의와 배경, 연구 유형 등 이론적 논의, 방법론의 유형과 특징, 그리고 적용 사례와 함의 등을 탐색한다. 이를 위해 근거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인 글레이저, 스트라우스와 코빈, 차마즈 등을 중심으로 한 근거이론의 체계와 방법들을 논의한다. 근거이론이 다른 질적 연구와 다른 점은 범주구성, 코딩 분석, 이론 개발 등의 특수한 방법과 절차들을 사용한다는 점에 있다. 근거이론의 의의는 현존하지 않는 이론의 개발이나 기존 이론의 개선을 도모하는 데 있다.
제6장 현상학 연구에서는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을 토대로 질적 현상학 연구의 이론과 방법들을 살펴본다. 현상학 연구는 다양한 철학적, 사회학적, 교육학적 접근을 통해 이론과 방법론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후설의 현상학은 질적 현상학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개인의 생생한 체험과 ‘사태 그 자체’로 돌아가 의식의 지향성을 찾아내고, 다시 추상적인 수준에서 의미의 본질을 발견하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학적 접근의 의의는 생활세계에서 인간이 자명하게 여기는 신념과 확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제7장 문화기술지 연구에서는 문화기술지 연구의 다양한 이론과 방법론의 체계들을 살펴보고, 국내 문화기술지 연구의 경향과 시사점들을 규명하고자 한다. 문화기술지란 ‘사회적 생활에 대한 일상의 기록’으로서 특정 지역의 사회갈등, 문화생산, 실천행위의 현장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질적 연구방법론이다. 그 목적은 현지인의 관점에서 상호 관계하고 외부자의 관점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지역사회의 심층성과 복잡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특히 문화기술지는 문화공유집단뿐 아니라 문화생산과 갈등의 현장,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와 타자들에 대한 관심을 중요하게 다룬다.
제8장 사례연구에서는 이론과 방법론의 핵심적인 사항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위해 사례연구의 정의와 배경 및 범주, 방법론의 유형과 특징, 그리고 사례연구 방법론의 적용 사례에 나타난 주제 유형과 분석방법들을 검토한다. 사례연구의 의의는 개인과 공동체, 관계와 프로젝트 등 사례들을 선정하여 단일 사례나 다중 사례의 독특성과 쟁점들을 분석함으로써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적 관점을 모색하는 데 있다.
제9장 질적 연구의 검증방법에서는 다양한 타당성과 신뢰성 검증방법론과 연구의 윤리성 확보를 위한 연구자의 태도 등을 검토한다. 이를 위해 구바의 자연주의적 입장, 레더의 독특한 타당성과 신뢰성 범주들, 그리고 삼각검증법, 참여자 검증, 동료 검증 등의 다양한 검증방법론을 검토한다. 나아가 연구의 윤리성 확보를 위한 연구자의 가치판단과 책임 있는 태도를 논의한다.
이상의 질적 연구방법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주관성과 사회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중요한 이론과 방법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질적 연구방법론이 단순히 기법이나 해석의 도구로 사용될 경우 이야기의 세계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놓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질적 연구자가 기법만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독특한 방법론의 사유들을 실천하여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드러내고 과감히 새로운 만남을 위한 문턱을 넘어서는 데 있다.
덧붙여 자료수집에 도움을 준 박지혜 연구자와 소유석 연구조교, 최종적으로 출판 편집과정에서 세심한 교정작업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김지연 대표님과 지금 출판사 편집위원님들, 그리고 동고동락을 함께하는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동료 교수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책이 발간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과 엄격한 심사과정을 관리하고 진행해준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 사업 관계자분들과 세심한 지적을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16년 6월
흑석동 연구실에서 강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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